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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화 만드는 노인

2009.03.17 16:56

썬더 조회 수:10554

( 예전에 솔땅 새내기 게시판에 올렸던 글인데 한 번 올려봅니다~ 초급 때 쓴 글이니 걍 재미로 읽어주세요 ㅋㅋ )

(이거 원본 작품을 모르시는 분들이 계셔서.. 교육과정이 달랐던듯 -_-;
원작 '방망이 깎던 노인' 입니다 ㅋㅋ -> http://www.runbrain.co.kr/rw_board/data_r/data_r3/data_r3_22.htm )



댄스화 만드는 노인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내가 갓 라속에 가입해 살사를 배운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볼 일이 있어 서울역에 갔다가 홍대 바 벙개 가는 길에,

같은 초급반 살세라가 굽이 빠진 댄스화 대신에

새 댄스화를 사와 달라는 문자가 와서 댄스화를 사러 염천교로 향했다.

가다 보니 마침 서울역 맞은편 캬바레 앞에서

캬바레용 댄스화를 만들어 파는 노인이 있었다.

살사용 댄스화도 만들어 줄 수 있겠냐고 부탁을 했다.

왠지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

했더니,

" 댄스화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만들어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만드는 것 같더니,

날이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만들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바 벙개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초조해 똥꼬가 오므라들 지경이었다.

" 더 만들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 만들만큼 만들어야 댄스화가 되지, 신발 밑창만 가죽이라고 댄스화가 되나. "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만든단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바 벙개 가야 한다니까요! "

노인은 퉁명스럽게

" 다른 데 가서 사우. 난 안 팔겠소. "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벙개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 그럼, 마음대로 만들어 보시오. "

"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댄스화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만들다가 말면 되나. "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댄스화를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하게 486 노트북으로 다음 캬바레 카페에 로그인해 댓글을 달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어이가 없어 같이 게시판을 구경하게 되었다.

전국의 캬바레 위치정보, 후기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카페였다.

새로 올라온 글들에 댓글을 모두 달고 난 후에야

댄스화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댄스화다.



벙개 시간에도 늦고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따위로 댄스화를 만들어서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캬바레 댄스화나 만들면서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댄스의 댄자도 모를 것처럼 생겨서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돌리며 오초 스텝을 밟고 있었다.



그때,

스텝을 밟고 있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마에스트로다워 보였다.

파트너도 없이 혼자서 아브라소 자세를 하고 있는 모습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바에 가서 댄스화를 내놨더니 파트너는 이쁘다고 야단이다.

굽이 빠진 예전 댄스화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파트너의 설명을 들어 보니,

댄스화의 무게 중심이 잘 안 맞으거나 굽이 틀어져 있으면

턴을 돌다가 흔들려서 팔꿈치로 남자의 아구창을 가격하기 쉽단다.

요렇게 중심이 잘 맞는 것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부터 장인들이 만든 댄스화들은

싸구려 애나멜이 아닌 진짜 가죽으로만 댄스화를 만들었다.

전체를 가죽으로 만든 댄스화는 색깔만 예쁜 것들과는 달리

신다보면 늘어나고 줄어들어서 주인 발 사이즈에 딱 맞게 변해,

신고 춤을 추기에 편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소재로 만든 건 모양이 전혀 변하지 않고

남는 부분은 일 년을 신어도 남고

조이는 부분은 삼 년을 신어도 발을 계속 누른다.



굽도 중요하다.

9센티 힐이어도 나이키 에어포스를 신은 것처럼 안정적으로 몸을 받쳐주는 게 있는 반면

굽이 별로 높지도 않은데 발목 부분이 심하게 흔들려서 한두 달도 채 못 신고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

게다가 저질 댄스화와는 달리 장인이 만든 댄스화는

땀처리가 잘 되어서 여성 댄서들의 고질적인 고민인 발냄새가 잘 안난다.

겉으로만 보고서는 알 수가 없다.

단지 말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땀처리를 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서 몇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오 생계는 생계지만,

댄스화를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댄스화를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명품 댄스화를 만들어 냈다.

이 댄스화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 그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 담. ' 하던 말은

'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저질 댄서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커플 댄스가 번창할 수 있담. ' 하는 말로 바뀌었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땅콩에 데낄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다음 주말 벙개날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캬바레 불법 영업 단속에 걸려 영업정지를 당한 것이다.



나는 그 노인이 스텝을 밟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 노인이 춤을 추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남은 발자국은 어중간한 실력으로 도전했다간

허리가 부러진다는 3단 연속 빽사까다의 자취였다.

아! 그때 그 노인은 파트너도 없이 혼자서 아브라소 자세를 하고서는

언제 쓰일지 기약도 없는 전설의 빽사까다를 연습하고 있었구나.

열심히 댄스화를 만들다가 빠라다, 바리다, 사까다를 했을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내 입에선 무심히 ' 닥춤.. 닥치고 춤이나 추자.. '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여동생이 스윙를 배운다고 락스텝을 밟고 있었다.

전에 라속에서 강습을 듣고 홍대 하회마을에서 새벽까지 닭매운탕과 파전을 먹던 생각이 난다.

요새는 하회마을의 닭고기 맛도 사라진지 오래다.

문득 8년 전 댄스화 만들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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